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문단 편집) ==== 십자군 전쟁 관련 ==== 김태권은 기본적으로 십자군 원정의 명분 자체를 조작으로 본다. 성지 순례는 안전했고 성지가 무슬림들에게 모욕당한 적도 없다는 것이다. 물론 전혀 사실이 아니다. 피에르가 헝가리와 동로마령 발칸반도에서 개고생하다 겨우 콘스탄티노플에 입성하자 안나 콤네나가 그만 집에 돌아가는게 어떻냐고 종용하는 장면에서 은자 피에르가 살아 돌아왔다는 것을 이유로 성지순례가 안전했다고 묘사하는데("그대의 몸이 안전한 것이 증거"), 그 당시 역사를 무시하는 [[개드립]]이다. 십자군 전쟁은 기본적으로 '''무장순례'''가 확장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전근대 시기에서 성지순례를 포함한 장거리 여행이 안전하면 그게 이상한거다. 순례길은 시기에 따라서 상대적으로 평화롭기도 하였으나, 위험할 때도 있었으며, 1차 십자군 당시는 파티마조 이집트 대신 [[셀주크 제국]]이 점령하여 상대적으로 불안한 상황이었다. 여기에 무장순례의 전통을 생각하면 피에르가 살아 돌아왔다는 것과 예루살렘 순례길이 안전하다는 것은 결코 동의어가 아니며, 오히려 십자군 운동 자체가 그동안 있었던 무장순례의 전통을 기반으로 확장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성지 모욕 건만 해도 1권 초반에 피에르가 "전쟁합시다! 전쟁!"이라고 주장하자 군중들이 "이 미친놈아, 이게 일방적인 침략이지 무슨 해방이냐? 그리고 그동안 무슬림들이 성지에 무슨 모욕이라도 한적이 있었냐?"하고 마구 비웃지만, 불과 십자군 전쟁이 터지기 몇년 전에 [[파티마 왕조]]가 예루살렘의 일부를 파괴한 사건이 있어 기독교도들의 공분을 산 일이 있었다. 특히 1차 십자군은 예루살렘에서 파티마 왕조의 사신을 만나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맹렬히 항의할 정도로 그 일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이후 진행되는 원정의 서술에서도 십자군은 악. 동로마와 이슬람은 피해자라는 시각하에 왜곡하였다. 십자군이 룸 술탄국에게 점령된 동로마 영토인 니케아를 공격할 때, 알렉시오스 1세가 십자군을 바람맞히고 일방적 강화를 해서 기껏 피흘려 도시를 점령했더니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동로마가 홀라당 도시를 다 먹어버려 십자군이 느낀 배신감과[* 이 배신 행위를 자비로운 알렉시오스 1세가 학살 위기에 처인 무슬림들을 구원했고 탐욕스러운 십자군은 배은망덕하게 황제를 원망했다는 식으로 서술했다.], 이슬람보다는 동로마의 도시라고 할 수 있는 [[안티오키아]]의 문제, 십자군을 통한 동로마의 영토 회복 등은 서술하지 않거나 왜곡했다. 아민 말루프의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을 보면 룸 술탄국의 주민들은 술탄을 찬탈자로, 동로마의 황제만을 진정한 왕으로 모셨다는데 그럼 김태권식 잣대를 들이대면 십자군은 해방자여야 하지만 김태권은 십자군의 니케아 원정도 그냥 침략자들이 무슬림을 공격한 식으로 묘사한다. 1,2권의 서술만 보면 왜 서방의 호구로 보이는 동로마가 그 사이에 영토를 넓혀서 3권에서 요안니스 황제가 안티오키아에게 갑질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특히 안티오키아는 동로마령이었다가 십자군 전쟁 직전 셀주크 튀르크에게 점령당했고, 주민부터 이슬람계보다는 동로마계인 도시인데도 불구하고 100% 무슬림이 사는 도시라고 왜곡했다. 안티오키아의 동로마적인 성격은 십자군 전쟁 초반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이 문제를 왜곡하니 동로마의 회복 의지와 십자군 간의 갈등 등은 무시해 버렸고 결과적으로 책의 성향이 친이슬람으로 왜곡되는데 한 몫을 했다. 이후 안티오키아 공방전의 경우에는 안티오키아의 성주 야기 시얀이 기독교도 십자군이 몰려오자 기독교도 시민들을 밀정으로 간주하고 추방한 일을 다루면서 전쟁이 좋은 인연을 망쳐놨다고 서술했는데 생각해보면 굉장히 웃긴 일이다. 우선 안티오키아는 불과 얼마 전까지 동로마 제국령이었고 주민들은 대부분 기독교도였다. 침략자 영주가 원주민을 내쫓은 일을 가지고 십자군이 나쁜 놈이라고 하는데, 임진왜란으로 비유하자면 일본군이 어느 도시를 점령하자 명나라 군대가 탈환하러 오고 일본군이 살던 조선 주민들을 내쫓자 누가 "봐라, 괜히 명나라 군대가 와서 일본군과 조선인이 같이 살던 '''좋은 인연이 망가졌지 않느냐?'''"라고 한다면 당사자들 입장에선 할 말 없어진다. 그리고 안티오키아 전투 중에 은자 피에르를 성창을 발견한 피에르 바르톨로메오를 동일인물로 처리했는데, 실제로 다른 인물이다. '''은자 피에르는 프랑스로 돌아와 1115년에 죽었고 피에르 바르톨로메오는 1차 십자군 전쟁 와중 성창 문제로 죽었다.''' 작가는 본문 중에 두 명의 피에르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었다고 언급하며, 만화적인 재미를 위해 은자 피에르와 동일 인물로 처리했다고 분명하게 서술하였다. 다시 말하면 재미를 위해 역사왜곡을 했다고 본인 입으로 시인한 셈. 또한 군중 십자군 시절부터 일관적으로 십자군을 독소전쟁 당시에 나치 독일군처럼 매도하지만, 김태권이 거품 물고 흥분하며 깐 묘사들 자체가 당시 기준에선 딱히 이상할 것도 없는 광경들이었으며(십자군 전쟁에서 대부분의 학살 건은 도시가 무력으로 함락된 뒤이거나 포로협상이 결렬된 뒤에 벌어졌으며, 이것은 근대까지도 전쟁의 관습으로 받아들여졌다. 고대 이래로 '공성구가 성벽에 닿은 뒤'부터는 방어자의 안전은 보장받을 수 없었다. 그 이전에 항복할 경우 십자군은 대체로 당시 전쟁의 룰을 준수했다. 이런 맥락을 무시하고 다짜고짜 나치에 비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심각한 무지다), 십자군의 관용은 아예 무시한다. 십자군도 마라트 안 누만의 일 정도를 제외하면 순순히 항복한 도시들을 동맹군을 늘리기 위해 우대했고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의 고증만 봐도 유럽에서 온 귀족들이 일상 생활에는 중동식 복장을 하는데 거부감이 없는 모습을 보인다. 게다가 에데사 백작령을 세운 보두앵은 현지 아르메니아 여인과 결혼하기도 했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현지 주민들을 싸그리 인종청소할 수 없는 이상 통치를 위해 이질적인 요소를 인정하고 관용을 베푸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었다. 사실 십자군 왕국에서 종교 간의 공존은 이베리아 왕국의 이슬람 왕국들의 모습과 별로 다를 것도 없었다. 악명높은 예루살렘 학살에서도 십자군은 탕크레드 등이 부녀자들에게 자비를 베풀 것을 명하기도 했고 몸값을 지불할 수 있던 자들은 살려줬다. 이런 점은 거의 지적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편향성이 돋보일 수밖에 없다. 사실 십자군 정복자들은 초반에는 학살을 저질렀지만 일단 십자군 국가를 건설한 다음에는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토착민들을 나쁘게 대우하지 않았다. 이건 3권 이후로는 그럭저럭 드러난다. 같은 시대의 인물인 우사마 이븐 문키드의 기록을 보면 우트르메르에 오래 거주한 '[[프랑크족|프랑크인]]'과 '[[사라센]]인'들은 제법 괜찮은 관계를 유지했는데, 1차 십자군 전쟁 당시에도 [[시리아]]의 여러 영주들이 십자군에게 오히려 동맹을 요청하는 등 유럽인 vs 아랍인의 단순 구도가 아니었다. 또한 학살의 서술에서도 자기가 원하는 것만 보여 주었다. 군중 십자군과 1차 십자군 전쟁 당시 서방측의 학살은 마을 단위의 학살까지 하나하나 자세하게 서술하면서, 2차 십자군 전쟁의 원인이 된 이마드 딘 장기의 에데사 함락 및 학살은 생략했다. 단지 [[에데사]]를 이슬람이 회복했다고 하는 묘사인데, 에데사는 애초에 무슬림 도시도 아닌 아르메니아 정교회의 도시고, 십자군에게 정복당한게 아니라 현지 아르메니아인 군주인 토로사가 보두앵 1세를 후계자로 지명하면서 평화적으로 양도한 영토다. 이마드 딘 장기의 공세는 그냥 자신의 영토를 확장하려는 침략 행위에 불과했고 에데사 사람들이 저항하는 것은 당연한데 저항했다는 이유로 도시에서 서구인은 물론 아르메니아인을 가리지 않고 한 살육은 1차 십자군의 예루살렘 함락과는 달리 단지 회복일 뿐이라는 식으로 기술한다. 당연하지만 장기를 비롯한 주요 이슬람 군주들은 '정의'를 위해 싸운다고 묘사된다. 카르부카 빼고는 이슬람에서 나쁜 놈 나오는 일이 없다. 반면 십자군은 [[고드프루아]]나 [[레몽]] 정도나 조금 정상적이고 나머진 그냥 다 피에 굶주린 전쟁광들이다. 하지만 장기도 김태권이 주장하는 '과거사 청산'인지 따윈 안중에도 없이 그냥 자신의 제국을 건설하는데 열중한 정복군주에 불과하다. '과거사 청산' 운운 자체가 20세기에나 가능한 시각을 과거에 투영하는 것으로 역사학에서 가장 금기시하는 시대착오의 오류이다. 고대부터 상당히 근래까지도 힘을 키운 세력이 정복에 나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었고, 대체로 그렇게 받아들여졌다. 당장 작가가 띄워주는 이슬람 세력부터가 정복으로 성장한 제국이고, 이들이 정복한 땅들 대부분이 본래 그리스도교 문명권에 속한 지역들이었다. 작중에서 시민들에게 도시를 돌려줘야 한다 운운하면서 정작 그 시민들이 기독교도인 건 신경 안 쓰고 무조건 주민들 입장에선 침략자인 건 십자군이나 매한가지인 무슬림에게 땅 돌려줘라 라고 일관한다. 사실 엄밀히 말해서 선빵 때린 것은 무슬림이니 더 깊게 들어가면 이것도 적절한 비유는 아니다. 게다가 김태권이 미화한 에데사의 경우는 투르크가 싫어서 자발적으로 십자군을 받아들인 케이스니 왜곡의 도가 더욱 심해진다. 다니슈멘드 왕조에게 포로로 잡혔던 보에몽이 그의 조카 탕크레드에게 뒤통수를 맞아 안티오키아의 지배권을 뺏겼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빼도 박도 못하는 역사왜곡이다. 다만 탕크레드가 보에몽 석방을 방해한 건 사실이라고 한다. 안티오키아급의 거대한 영지의 지배권을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다고 낼름 먹어치우는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된다. 이후 보에몽의 알레포 원정도 탕크레드에게 사정해서 간 걸로 묘사했지만 실제로는 그냥 보에몽의 주도였고 그 전투에서 패배한 보에몽은 조카 탕크레드에게 쫓겨난 것이 아니라 탕크레드를 섭정으로 임명한 후 동로마의 그리스 영토를 노리고 이탈리아로 건너간 것이다. 당장 보에몽이 죽고 나서 안티오키아의 지배권은 보에몽의 어린 아들인 보에몽 2세에게 돌아갔다. 타란토의 보에몽에 관한 왜곡은 그뿐만이 아니라서 타란토의 보에몽이 단순히 새어머니 시켈가이타의 농간으로 한치의 땅도 상속받지 못했다고 서술했지만 사실 보에몽은 아드리아해 동편의 영토, 즉 두라초를 위시로 한 그리스 영토를 상속받았으나 역병으로 초토화된[* 보에몽의 아버지인 [[로베르 기스카르]]도 이 때 역병으로 죽었다.] 그 지역을 베네치아와 동로마가 순식간에 탈환해서 빈털털이 신세가 된 것이다. 김태권은 폭력의 순환을 비판하면서 풀크, 보두앵 3세 등 '''십자군''' 군주들을 폭력의 신봉자로 못박아놓고 그 반대에 선 평화의 신봉자로 멜리장드를 내세웠다. 그러나 실제 역사를 떠나서[* 예루살렘의 멜리장드에 대한 기록은 당시 기준으로는 후계자의 혈통 유지 필요성 때문에 결혼을 상당히 늦게 했다는 것과 제2차 십자군 요청. 예루살렘 왕국의 유일한 여왕 등이 전부다.], 김태권의 서술만 보고는 멜리장드가 평화주의자였는지, 평화주의 관련 내용이 김태권의 일방적 주장인지 많이 헷갈린다. 멜리장드는 풀크가 죽자 이번 기회에 유럽인과 아랍인의 화해를 만들어내겠다고 원정 사업이 아니라 문화 사업에 투자하겠노라고 나서는데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했는지는 전혀 말하지 않았다. 뭐 그간 김태권이 작중 행적에 일일이 다 사료의 출처를 제시한 건 아니지만 하필이면 그 다음에 멜리장드가 우트르메르를 문화 강국으로 만들겠다고 할 때는 [[김구]]가 쓴 [[백범일지]]의 일부('나의 소원' 중에서)를 발췌해서 인용한 바람에 독자들이 이게 다 김태권의 상상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들게 만들었다. . 그리고 토머스 F. 매든[* [[세인트 루이스]] [[대학]] 역사학과의 중세사 교수이자 학장이다.] 등이 주장한 "십자군 전쟁은 가톨릭 세력이 이슬람권에 벌인 일방적 침략전쟁이 아니다"는 주장을 부정하면서, 참고문헌에 포함한 매든의 저서 <십자군: 기사와 영웅들의 장대한 로망스>(2005)>[* 출간 당시 기준이지만 정설을 잘 반영한 책으로 십자군 관련 자료가 부족한 한국에는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책이다. 국내에 번역된 다른 책을 더 찾자면 W.B.바틀릿이 2004년에 쓴 <십자군전쟁: 그것은 신의 뜻이었다!>, 아민 알루프가 쓰고 2002년에 번역본이 나온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도 있다. 국내에 번역본이 없는 책을 보려면 영어를 원서 읽을 수준까지 배우는 수밖에 없다...]를 극우적이고 서구 우월주의를 담은 책으로 비판했다. 김태권의 주장과 달리 매든은 성향도 리버럴한 [[뉴욕타임스]]에 기고를 하는 사람이고[* 물론 뉴욕타임스는 워낙 다양한 스펙트럼의 칼럼니스트들을 섭외한다.] 십자군 연구에 있어서는 세계적인 권위자인데 김태권은 자기 논조('''=사악한 서양은 절대악, 선량한 [[이슬람]]은 피해자''')에 맞지 않는 주장을 폈다. 개정판에서는 매든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이 줄고 서구 중심적에 우익적인 관점이 거슬린다 정도로 완화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